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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갈까?

[경남 합천] 아이와 가볼만한 곳 가야산 해인사(팔만대장경, 장경판전)

by 위즈그램 2021.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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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단풍구경도 하고 아이의 역사 교육에 도움이 될 만한 '19년 11월에 방문한 경남 합천에 소재한 해인사를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19년 11월 어느 날 아내가 뜬금없이 어릴 때 가 보았던 합천 해인사에 가보고 싶다고 하여 방문하게 된 곳입니다. 저의 경우 학교 다닐 때 책에서나 보았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기에 위치 검색 및 주변에 맛집 검색도 하고 아이에게 아는 척도 하기 위해 오랜만에 교과서를 꺼내 공부도 했던 곳 이랍니다.

■ 해인사 연혁
국보 32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의 보관 장소로 유명한 해인사는 신라 의상대사의 법손(불가의 제자들)인 순응, 이정 두 스님이 신라시대 애장왕 3년(802) 10월 16일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창건되었습니다.
몽고의 외침을 불력으로 물리치고자 만들어진 대장경은 경판의 수가 81,258판에 이르러 팔만대장경이라 불리고 있으며, 1236년(고종 23년)부터 1251년(고종 38년) 걸쳐 완성된 현존하는 대장경 중 가장 오래된 대장경으로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고 있으며, 국보 제32호인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일명 팔만대장경)은 200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이를 보관하기 위해 건립된 국보 제52호인 목조건물인 '장경판전'은 경판 보관에 최적화된 건물 배치, 자연통풍, 온습도 유지가 가능한 과학적 구조 설계로 800년 넘는 긴 세월 동안 온전히 보관되고 있는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대장경 간행
불교 사상에 대한 이해 체계가 정비되면서 불교에 관련된 서적을 모두 모아 체계화하는 대장경이 편찬되었다. 경. 율. 논의 삼장으로 구성된 대장경은 불교 경전을 집대성한 것으로, 교리 체계에 대한 정리가 선행되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문화적 의의가 높은 유산이다. 현종 때에 거란의 침입을 받았던 고려는 부처의 힘을 빌려 이를 물리치려고 대장경을 간행하였다. 70여 년의 오랜 기간에 걸쳐 목판에 새겨 간행한 초조대장경은 몽골 침입 때에 불타 버리고 인쇄본 일부가 남아 고려 인쇄술의 정수를 보여 주고 있다. 초조대장경이 만들어진 얼마 후, 의천은 고려는 물론이고 송과 요의 대장경에 대한 주석서를 모아 교장을 편찬하였다. 이를 위하여 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을 만들고, 교장도감을 설치하여 10년에 걸쳐 신라인의 저술을 포함한 4700여 권의 전적을 간행하였다. 몽골 침략으로 소실된 초조대장경을 대신하여 고종 때에는 대장경을 다시 만들었다.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16년 만에 이룩한 재조대장경은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다. 8만 장이 넘는 목판이므로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팔만대장경은 방대한 내용을 담았으면서도 잘못된 글자나 빠진 글자가 거의 없는 제작의 정밀성과 글씨의 아름다움 등으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대장경으로 꼽힌다.
- 국사 교과서에서 발췌 -  


해인사 방문 전 사전에 점심식사 장소로 정해두었던 해인사 산채정식 거리에 있는 삼일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한 후 해인사에 방문합니다.




■ 주차장
해인사 성보박물관 주차장을 이용하였으며, 주차장부터 일주문까지의 거리는 경사도가 심하지는 않지만 오르막길이고 거리는 약 900m 정도입니다. 최근의 어떤 글을 확인해 보니 노약자가 탑승한 경우 일주문 근처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합니다. 저희는 산책 목적도 있었기 때문에 걷는 게 좋았지만, 노약자에게는 조금 힘든 길이 될 수도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해인사 사찰 안내도


■ 김영환 장군 팔만대장경 수호 공적비
일주문까지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산책로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길 중간쯤에서 김영환 장군의 팔만대장경 수호 공적비를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팔만대장경이 보존될 수 있었던 숨은 영웅인 김영환 장군에 대해 수업 시간에 들어보신 적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제10 전투비행대장으로 복무 중이던 김영환 대령은 낙오된 북한군 900명이 해인사로 숨어들었다는 첩보를 입수한 상부에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명령을 받은 김영환 대령은 상부의 명령과는 다르게 "내 명령 없이는 절대 폭탄을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고, 계속되는 상부의 폭탄 투하 명령에 불복하며, 해인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폭탄을 투하하고 부대로 복귀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군사 재판에 회부된 김영환 대령은 "사찰이 국가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공비보다는 중요하다"며 당당히 명령 불복종 사유를 말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김영환 장군은 당시 영국 사람들이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바꿀 수 없다고 말하지만, 한국사람들은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다 준다고 해도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은 바꿀 수 없는 보물 중의 보물이기에 폭격하지 못하고 우회했다"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져 김영환 장군의 숭고한 역사의식 엿볼 수가 있습니다.



고사목 위 돌탑이 쌓여 있어 아이도 탑을 쌓고 싶어 하네요.


■ 세계문화유산 표지석
일주문과 마주하고 있는 팔만대장경, 장경판전의 유네스코 등재를 알리는 세계문화유산 표지석입니다.


■ 일주문(홍하문)
큰절에 들어설 때마다 처음 만나게 되는 일주문. 기둥이 양쪽에 하나씩 세워져 문을 지탱하고 있는 건축구조에서 그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해인사의 일주문은 홍하문이라고도 하며, 건축 양식은 조선시대 초기 양식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봉황문(천왕문)
일주문으로 들어서서 수문장처럼 버티어 서 있는 천년 노목의 가로수길을 따라 걷다 보면 두 번째 문인 봉황문이 나타납니다. 봉황문은 천왕문이라고도 불리며, 이 안에는 돌이나 나무 등으로 조각되거나 탱화에 그려진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 국사단
국사단은 가야산 산신령을 모시는 전각이라고 하며, 봉황문과 해탈문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방문 당시 국사단 담장 밖으로 빨갛게 물들여진 단풍나무와 소원나무에 매달려 있는 노란색의 소원지들이 너무 예뻤답니다.


아들이 꼭 소원지를 적어 달아 두고 싶다고 하여, 아들의 소원과 아빠의 소원을 적어 국사단 소원나무에 달아 두었습니다. 아들의 소원은 계속되는 것 같은데 아빠의 소원은 언제쯤 이뤄지려나....


■ 대적광전, 정중삼층석탑
대적광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대신에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 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래서 법당의 이름도 대웅전이 아닌 대적광전이라고 하며, 지금의 건물은 802년에 지은 건물 자리에다 1818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해인사 창건 당시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경남 유형문화재 제254호인 정중삼층석탑(정중탑)은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높이 6m로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원래는 2층 기단이었으나 1926년 중수할 때 1층이 더해졌다고 합니다. 또한 1926년 6월 중수 당시 상층 기단의 석함 속에서는 9개의 작은 불상이 발견되었으며, 중수가 끝난 뒤 다시 석탑 안에 봉안했다 합니다.








■ 장경판전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은 대적광전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체온 또는 입김 등으로 인해 장경판전의 환경이 바뀌어 팔만대장경이 훼손될 수 있므로 장경판전 주위에는 금줄이 쳐져있으며, 금줄 밖에서 안을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

▶ 팔만대장경의 유지 비법
장경각의 터는 토질 자체도 좋거니와, 그 땅에다 숯과 횟가루와 찰흙을 넣음으로써, 여름철의 장마 기와 같이 습기가 많을 때는 습기를 빨아들이고, 또 건조기에는 습기를 내보내곤 하여서 습도가 자연적으로 조절되게 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기능을 더 원활하게 하려고, 판전의 창문도 격자창 모양으로 하는 수다라전의 창은 아래 창이 윗창보다 세배로 크게 하였고 법보전의 창은 그 반대 꼴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아주 과학적인 통풍 방법으로서, 오히려 건축방식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따라가기 어려운 우리 선조들의 슬기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 팔만대장경의 제작과정
경판 제작을 위해 지리산에서 벌목한 자작나무, 산벚나무 등을 바닷길을 따라서 강화도까지 운반하였으며, 3년 동안 바닷물에 담근 다음 그늘에서 말린 후 큰 가마솥에 넣어 다시 쪄서 말린 후 옻칠을 하여 판목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판목을 세로 8치(3.03*8=약 24cm), 가로 2자(30.30303*2=약 60.6cm), 두께 1치 2~3푼(3.03*1.2=3.636cm)으로 자르고 양쪽 끝에는 뒤틀리지 않게 각목을 붙인 후 네 귀는 구리로 장식했다고 합니다.
또한 전국 각지에서 선발된 목수와 서예가, 불교인들이 이작을 담당했으며, 경판의 1면에는 23행, 1행은 14자로 판목 양면에 글자를 새겼다고 합니다.  

▶ 팔만대장경의 규모
팔만대장경을 1톤 트럭으로 옮기려면 260대 필요.
팔만대장경에 새겨진 불경을 원고지에 옮겨 적으려면 200자 원고지 25만 장이 필요.
-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발췌 -



해인사 구광루 앞 마당 해인도


■ 구광루 앞마당 해인도

구광루 앞마당에는 그려져 있으며,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 시절 화엄사상을 요약한 만자를 발전시킨 도안에 써넣은 것이라고 합니다. 미로와 같이 54번 꺾어 도는 동안 그 내용을 마음에 채득 하면서 따라가면 깨달음에 도달한다... 중략


결론은 해인도를 합장을 하고 한 바퀴를 돌게 되면 큰 공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해인도를 마지막으로 원래 왔던 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이동합니다.

마지막으로 해인사를 여유롭게 구경하는데 걸린 시간은 2시간 이상이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해인사 방문 시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다녀오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공감과 구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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